분류 전체보기54 배재학당 역사 (설립배경, 교육철학, 인재배출) 방 두 칸 벽을 허물어 만든 교실에서 두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학교가 있습니다. 1885년 8월 3일, 배재학당의 첫 수업 풍경입니다. 저는 학창시절 교실 에어컨이 안 나온다고 투덜댄 적이 있는데, 이 기록을 읽으면서 그때 제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조선은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외세의 침탈이 본격화되던 격동기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한 명이 서울 정동 언덕에 근대식 학교를 세웠고, 이곳에서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인물들이 배출되었습니다.선교사 아펜젤러와 고종의 만남으로 시작된 배재학당 설립배경배재학당을 세운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는 1885년 6월 인천에 두 번째로 입국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입니다. 그는 먼저 입국한 의사 스크랜튼의 집 한 채를.. 2026. 3. 10. 이화학당 첫 학생들 (배움의 기회, 유관순, 스크랜튼) 솔직히 저는 학창시절에 학원을 빠지고 친구들이랑 PC방이나 노래방을 가서 시간을 때운 적이 한 번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께는 수업 잘 들었다고 거짓말하고요. 그런데 이화학당의 첫 학생들에 대한 자료를 읽으면서 제 과거가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육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 경험상 그 기회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배움이 목숨을 건 선택이었던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교육권이 얼마나 힘겹게 만들어진 것인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배움이화학당의 첫 학생은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관이 되고 싶었던 여인이었습니다. 두 번째 학생은 집이 너무 가난해서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 2026. 3. 9. 이승훈의 교육 헌신 (오산학교, 민족 대표, 유언) 186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이승훈은 오늘날 가치로 약 7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모은 조선 최대의 거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부를 던져 오산학교를 세웠고, 죽어서는 자신의 유골을 교육 표본으로 쓰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돈이 있으면 편하게 살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 아닌가요. 하지만 참고 자료를 읽으면 읽을수록, 이승훈 선생의 삶은 제가 상상했던 위인전 속 미담이 아니라 뼈를 깎는 실천의 연속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라 없는 양반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각성 이후,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조선의 미래를 위해 바쳤습니다. 이승훈의 오산학교 설립과 교육 철학이승훈이 오산학교를 세운 것은 1907년, 그의 나이 43세 때였습니다... 2026. 3. 8. 도산 안창호 교육사상 (인격혁신, 무실역행, 민주공화국) 요즘 교과서에서 배운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기억하는데, 정작 그분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그랬습니다. 이름은 익숙한데, 막상 "안창호가 뭘 했나요?"라는 질문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선생님의 교육사상을 깊이 파고들면서, 제가 왜 이분을 제대로 몰랐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선생님이 평생 강조하셨던 인격혁신과 무실역행의 정신은 단순한 독립운동 구호가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의 뿌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교육사상이 왜 지금도 우리에게 절실한지, 그리고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며 느낀 충격과 반성을 솔직하게 나눠보려 합니다.도산 안.. 2026. 3. 8. 주시경 선생님이 지킨 한글 (현대 한글, 조선어학회, 말모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450년이 지난 1894년, 한 청년이 서당에서 한문 강독을 듣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왜 우리말로 설명할 때만 아이들이 눈을 반짝일까?" 그 청년이 바로 주시경입니다. 저는 이 기록들을 보면서 한글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자음과 모음 체계, 띄어쓰기, 맞춤법의 뼈대가 모두 이분 손에서 나왔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알았습니다.훈민정음을 현대 한글로 바꾼 사람, 주시경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13살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양반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 서당에 중인 신분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담장 너머로 몰래 수업을 엿듣다가 진사 이회정의 눈에 띄어 특별히 입학을 허락받았습니다. 여기서 그는 한문 원문을.. 2026. 3. 7. 한글을 지킨 사람들 (조선어학회, 말모이, 광복 직후의 혼란)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 즉 독립운동 혐의였습니다. 이들이 한 일은 단 하나,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위대한 문자라는 사실만 알고 있지만, 제 경험상 그 한글이 일제강점기에 얼마나 간신히 살아남았는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이 이야기를 접하기 전까지는 한글날을 그냥 공휴일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을 알고 나니, 지금 제가 쓰는 이 글자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목숨 위에 세워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한글이라는 이름의 탄생과 조선어학회'한글'이라는 단어는 세종대왕 시대부터 쓰인 말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1913년, 국어학자.. 2026. 3. 7. 이전 1 ··· 3 4 5 6 7 8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