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7 도산 안창호 교육사상 (인격혁신, 무실역행, 민주공화국) 요즘 교과서에서 배운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은 기억하는데, 정작 그분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그랬습니다. 이름은 익숙한데, 막상 "안창호가 뭘 했나요?"라는 질문 앞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선생님의 교육사상을 깊이 파고들면서, 제가 왜 이분을 제대로 몰랐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선생님이 평생 강조하셨던 인격혁신과 무실역행의 정신은 단순한 독립운동 구호가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의 뿌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교육사상이 왜 지금도 우리에게 절실한지, 그리고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며 느낀 충격과 반성을 솔직하게 나눠보려 합니다.도산 안.. 2026. 3. 8. 주시경 선생님이 지킨 한글 (현대 한글, 조선어학회, 말모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450년이 지난 1894년, 한 청년이 서당에서 한문 강독을 듣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왜 우리말로 설명할 때만 아이들이 눈을 반짝일까?" 그 청년이 바로 주시경입니다. 저는 이 기록들을 보면서 한글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자음과 모음 체계, 띄어쓰기, 맞춤법의 뼈대가 모두 이분 손에서 나왔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알았습니다.훈민정음을 현대 한글로 바꾼 사람, 주시경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13살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양반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 서당에 중인 신분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담장 너머로 몰래 수업을 엿듣다가 진사 이회정의 눈에 띄어 특별히 입학을 허락받았습니다. 여기서 그는 한문 원문을.. 2026. 3. 7. 한글을 지킨 사람들 (조선어학회, 말모이, 광복 직후의 혼란)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 즉 독립운동 혐의였습니다. 이들이 한 일은 단 하나,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든 위대한 문자라는 사실만 알고 있지만, 제 경험상 그 한글이 일제강점기에 얼마나 간신히 살아남았는지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이 이야기를 접하기 전까지는 한글날을 그냥 공휴일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어학회 사건을 알고 나니, 지금 제가 쓰는 이 글자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목숨 위에 세워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한글이라는 이름의 탄생과 조선어학회'한글'이라는 단어는 세종대왕 시대부터 쓰인 말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1913년, 국어학자.. 2026. 3. 7. 호머 헐버트 (한글학자, 독립운동가, 문화재 지킴이)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일본 형사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한번도 헐버트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단 하루도 그의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있던 분이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미국인에 대해 이토록 절절하게 외쳤다는 사실이 제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합정역 근처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그가 잠들어 계시다는 걸 알고 난 뒤 직접 찾아가 참배를 드렸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의 친구(Friend of Korea)"라는 비문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한글학자 헐버트, 띄어쓰기와 사민필지를 만들다호머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1863~1949)는 1886년 23세의 나이로 조선 땅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미국 명문가 출신.. 2026. 3. 6. 조선시대 영어교육 (육영공원, 원어민 수업, 일제 잔재) 솔직히 처음 조선시대 영어교육 자료를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막연하게 '옛날엔 영어 같은 거 없었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140년 전 갓 쓰고 도포 입은 조상님들이 원어민에게 직접 배워 유창하게 대화했다는 기록을 보고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조선식 영어단어장'을 인터넷으로 찾아 실제로 공부해봤는데, 발음이 술술 나오고 R과 L 구분도 확실하게 되더라고요. 학원 원어민 선생님(영국인)한테 발음 좋다는 칭찬까지 받고 나니, 지금껏 배운 복잡한 발음기호는 대체 뭐였나 싶어 허탈했습니다.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육영공원의 탄생1882년 5월 22일, 강화도 제물포에서 조선과 미국이 최초로 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조선측 전권대신 신헌과 미.. 2026. 3. 6. 성균관 입학 (소과 시험, 유생 생활, 공관 권당) 조선시대 성균관 입학 정원은 전국에서 단 200명이었습니다. 3년에 한 번 열리는 과거에서 최종 33명만 뽑는 경쟁률은 오늘날 어떤 입시와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저는 처음 이 숫자를 접했을 때 현대 입시가 오히려 쉬워 보일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균관은 단순한 대학이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관료를 양성하는 국가 핵심 프로젝트였고, 그 안에서 유생들이 겪은 일상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처절하고 치열했습니다.소과 합격이 성균관 입학의 첫 관문성균관에 입학하려면 먼저 소과(小科)라는 예비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소과는 생원시와 진사시로 나뉘는데, 생원시는 유교 경전 해석 능력을 평가하고 진사시는 시와 문장 능력을 평가했습니다. 각각 100명씩 총 200명을 선발했고, .. 2026. 3. 5. 이전 1 ···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