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57 퇴계 성학십도 (마음공부, 루틴의 원형, 선조에게 보낸 그림) 최근 미라클 모닝이나 루틴 만들기가 유행하는 것을 보며 저는 문득 조선 시대 선비들은 어떻게 자기 통제를 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가 격몽요결에서 나쁜 습관을 끊어내라고 호통을 쳤다면,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는 그 이후에 우리가 어떤 마음의 지도를 그려야 할지 차분하게 설명해 줍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성학십도를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어려운 유교 철학 교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 책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68세 노학자가 17세 왕에게 남긴 열 장의 그림퇴계 이황은 1501년 연산군 7년에 태어나 1570년 선조 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성학십도를 올렸던 시점은 퇴계 선생의 68세, 선조가 17세로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때였습니다.. 2026. 3. 19. 격몽요결 (율곡이이, 공부습관, 자기계발) 퇴근 후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일부터 운동해야지, 책 읽어야지, 아이 교육 제대로 챙겨야지. 매번 다짐하지만 결국 작심삼일로 끝나는 제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신사임당의 교육법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들인 율곡 이이가 쓴 격몽요결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500년 전 천재 학자도 저와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되면서도, 그 습관이 500년째 인간을 붙잡고 있다는 게 서늘하기도 했습니다.율곡이 꼽은 공부를 방해하는 여덟 가지 습관 격몽요결격몽요결(擊蒙要訣)이란 '어리석음을 쳐내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격몽(擊蒙)이란 몽매함을 깨부순다는 의미로, 초학자가 학문에 입문할 때 빠지기 쉬운 잘못된 습관을 단칼에 끊어내라.. 2026. 3. 18. 신사임당 자녀교육 (스스로 생각하는 힘, 효심 실천, 인성 중심 교육) 솔직히 저는 5만원권을 쓸 때마다 신사임당 얼굴을 봤지만, 그냥 조선시대 위인 중 한 명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유명한 학자라서 어머니도 유명해진 사람 정도로요. 그런데 신사임당 자료를 읽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신사임당은 단순히 율곡 이이의 어머니가 아니라,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이자 교육자였으며, 그녀가 실천한 교육 방식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신사임당의 교육, 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교육신사임당의 교육 방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주입식 교육(Rote Learning)을 철저히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주입식 교육이란 학습자가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정보를 기계적으로 암기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어느 날 신사임당은 어린 율곡에게.. 2026. 3. 17. 율곡 이이 9번 장원급제 (과거시험, 임진왜란, 개혁) 여러분은 5천원권 지폐를 꺼낼 때 그 얼굴의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율곡 이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나니, 이 사람이 왜 우리 지폐에 새겨졌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시험을 잘 본 천재가 아니라, 조선의 멸망을 정확히 예견하고 끝까지 개혁을 외치다 좌절한 예언자였습니다.율곡 이이 과거시험 9번 장원급제, 그 뒤에 숨은 진실율곡 이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9번 장원급제'입니다. 여기서 장원급제란 과거시험에서 전국 수석으로 합격한 것을 의미하는데,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경쟁률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기록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문과 과거시험.. 2026. 3. 16. 조선시대 무과 과거제도 (응시자격, 시험과목, 격구)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친구들과 '조선시대에도 공시가 있었을까?'라는 우스갯소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막연히 '칼 잘 쓰는 사람 뽑는 시험 정도 아니었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무과 과거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본 후, 제 생각이 얼마나 단순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조선의 무관이 되려면 활도 잘 쏘고 말도 잘 타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사서오경(四書五經)과 무경칠서(武經七書) 같은 경전을 외우고, 심지어 경국대전이라는 법전까지 꿰고 있어야 했습니다. 문과 무를 모두 갖춘 인재를 요구했던 조선의 무과는 생각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시험 제도였습니다.조선시대 무과 응시자격과 망과의 양면성조선시대 무과는 법제상으로는 양인(良人)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 2026. 3. 15. 조선시대 과거시험 (응시 절차, 부정행위, 급제 후) 취업 준비하면서 채용 공고 알림을 하루에 수십 번 확인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보를 늦게 알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도 비슷했습니다. 왕이 갑자기 별시를 열면 서울에 사는 사람은 바로 알지만 지방 유생은 며칠 후에야 소식을 듣고, 그 사이 정원이 다 차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조선시대 과거시험 자료를 읽으면서 가장 놀란 건, 시험 제도의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보인 행동 패턴이 지금과 너무 닮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응시 원서 하나 내는 데도 집안 배경을 네 대나 증명해야 했고, 시험지 한 글자 잘못 올려 쓰면 탈락이었으며, 합격 후에도 자리가 없어서 몇 년씩 대기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조선시대 과거시험 응시 절차: 4대 조 관직 증명부터 .. 2026. 3. 14. 이전 1 2 3 4 5 6 7 8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