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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 (율곡이이, 공부습관, 자기계발)

by qnwkdjaak 2026. 3. 18.

율곡이이의 격몽요결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퇴근 후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일부터 운동해야지, 책 읽어야지, 아이 교육 제대로 챙겨야지. 매번 다짐하지만 결국 작심삼일로 끝나는 제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신사임당의 교육법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들인 율곡 이이가 쓴 격몽요결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500년 전 천재 학자도 저와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안이 되면서도, 그 습관이 500년째 인간을 붙잡고 있다는 게 서늘하기도 했습니다.

율곡이 꼽은 공부를 방해하는 여덟 가지 습관 격몽요결

격몽요결(擊蒙要訣)이란 '어리석음을 쳐내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격몽(擊蒙)이란 몽매함을 깨부순다는 의미로, 초학자가 학문에 입문할 때 빠지기 쉬운 잘못된 습관을 단칼에 끊어내라는 율곡의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율곡 이이는 1577년 42세의 나이로 관직에서 물러나 황해도 해주에 머물 때 이 책을 저술했습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당시 동인과 서인의 붕당 갈등, 개혁에 미적지근한 선조에게 실망한 그는 후학 양성에 집중하며 제자들이 학문의 시작에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이 책을 직접 썼습니다.

제가 격몽요결 제2장 혁구습(革舊習)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공부를 방해하는 여덟 가지 나쁜 습관 목록이었습니다. 율곡은 학문의 뜻을 두었다 하더라도 성취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오래된 나쁜 습관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그가 제시한 여덟 가지를 현대적으로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공부에서 오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쉴 생각만 하는 습관. 둘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책만 펴면 집안일이 생각나서 어지럽게 드나드는 습관. 셋째,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만 어울리며 사교활동이 끊어지는 걸 두려워하는 습관. 넷째, 공명심에 경전을 표절하는 습관. 다섯째, 풍류에 빠져 신선놀음 하는 습관. 여섯째, 게임에 빠져 하루를 날리는 습관. 일곱째, 부자들과 자신을 비교해 처지를 비관하는 습관. 여덟째, 재테크·음악·여색에 중독되어 학문을 소홀히 하는 습관입니다.

리스트를 읽어 내려가는데 제 일상이 그대로 적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퇴근 후 소파에 드러누워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밀려 한두 시간씩 보내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입니다. 율곡은 이걸 두고 '게임에 빠져 하루를 날리는 습관'이라고 딱 짚어놨는데, 500년 전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묘하게 위안이 되면서도 동시에 반성하게 됐습니다. 저는 회사 일 때문에 아이 교육을 못 신경 쓴다고 핑계 대고, 아이 챙기다 보니 제 공부는 못 하겠다고 또 핑계를 댔습니다. 율곡이 말한 '양쪽으로 편리한 처지를 차지하여 하는 일 없이 세월만 보내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율곡은 이러한 습관이 사람으로 하여금 '오늘 저지른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뉘우쳤다가 저녁에는 이미 다시 그렇게 하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분발해서 마치 칼을 가지고 단칼에 뿌리를 깨끗이 끊어버리듯이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단어가 딱 맞는 말이 없을 만큼, 이건 오래된 인간의 습성인 모양입니다.

뜻을 세우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법

격몽요결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 입지(立志)부터 제4장 독서(讀書)까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공부, 즉 수신(修身)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수신이란 자기 자신을 닦는다는 의미로, 유교 경전 대학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첫 단계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먼저 제대로 되어야 집안도 바로잡고 나라도 다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1장 입지에서 율곡은 이렇게 씁니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하여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겨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저는 이 대목에서 뭔가 찔렸습니다.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 저는 항상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혹은 '바빠서 어쩔 수 없어'라는 핑계를 먼저 준비해두는 편이거든요. 율곡이 말하는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율곡은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며 성인과 보통 사람의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뜻을 확립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을 도타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차이가 생긴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모두 나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제가 아이에게 '너는 왜 이렇게 못 하니'라고 타박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정작 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아이에게만 요구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제3장 지신(持身)에서는 몸과 마음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율곡은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를 강조하는데, 구용이란 발을 무겁게 하고 손을 공손히 하는 등 아홉 가지 몸가짐을 의미하며, 구사란 볼 때는 분명하게 보고 들을 때는 분명히 들으며 얼굴빛은 온화하게 하는 등 아홉 가지 생각을 뜻합니다(출처: 동양고전종합DB). 이러한 외적 행동과 내적 사유의 조화를 통해 학문을 진보시킬 수 있다는 것이 율곡의 생각입니다.

제4장 독서에서는 책을 읽는 순서와 방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율곡은 먼저 소학을 읽어 부모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는 도리를 배운 뒤, 대학·논어·맹자·중용 순으로 읽고, 이후 시경·서경·역경·춘추 등 오경을 익히라고 권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한 책을 익숙히 읽어서 의미를 다 깨달아 통달한 뒤에야 다른 책을 읽으라고 강조합니다. 많이 읽기를 탐내고 바삐 섭렵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저는 읽다 만 책이 책장에 수두룩합니다. 어디서 좋다는 말 들으면 사놓고, 며칠 읽다가 다른 책 사고, 또 읽다 말고. 독서 기록 앱에 '읽는 중'으로 표시된 책만 열다섯 권은 될 겁니다. 율곡이 살아있었다면 제 책장 보고 혀를 찼겠다 싶었습니다. 그가 강조한 '한 책을 통달할 때까지 읽는 법'은 단순히 독서법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조언이었습니다.

격몽요결은 조선 중기 이후 초학자들의 입문 교과서로 널리 쓰였으며, 인조 때는 전국 향교에 이 책을 내려 교재로 삼게 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습니다. 율곡의 친필 원본은 현재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보물 제60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조는 1788년 이 친필본을 열람하고 제사(題辭)를 직접 지어 붙일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격몽요결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은 혁구습장의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오늘 저지른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쳤다가 저녁에는 이미 다시 그렇게 한다. 그러니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분발해서 마치 칼을 가지고 단칼에 뿌리를 깨끗이 끊어버리듯이 해야 한다." 신사임당이 율곡에게 가르친 것도 결국 이 단칼에 끊어버리는 용기였을 겁니다. 어머니가 먼저 그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율곡이 그 가르침을 몸으로 익혔겠지요.

저는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말하기 전에 제가 먼저 소파에서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격몽요결의 입지장 첫 줄처럼,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500년 전 율곡의 가르침이 2025년 오늘을 사는 제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인간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제 모습이 부끄럽지만, 동시에 그 습관을 단칼에 끊어내겠다는 다짐도 하게 됩니다.


참고: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130
https://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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