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라클 모닝이나 루틴 만들기가 유행하는 것을 보며 저는 문득 조선 시대 선비들은 어떻게 자기 통제를 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가 격몽요결에서 나쁜 습관을 끊어내라고 호통을 쳤다면,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는 그 이후에 우리가 어떤 마음의 지도를 그려야 할지 차분하게 설명해 줍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성학십도를 처음 들었을 때 그냥 어려운 유교 철학 교재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 책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68세 노학자가 17세 왕에게 남긴 열 장의 그림
퇴계 이황은 1501년 연산군 7년에 태어나 1570년 선조 3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성학십도를 올렸던 시점은 퇴계 선생의 68세, 선조가 17세로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때였습니다. 노인이 소년 왕을 앞에 두고 평생 쌓아온 철학의 정수를 그림으로 정리해서 건넸다는 장면을 상상하면, 단순한 학문서가 아니라 어떤 간절함이 담긴 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퇴계는 선조에게 경연에서 강의를 했지만 열일곱 살짜리 임금이 너무 어려운 철학 내용을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강의하는 대신 열 폭 병풍을 만들어 상소를 올립니다. 젊은 서예가(아마 한석봉으로 추정)를 시켜 그림을 그리고,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한 번 읽고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읽으라고 당부했습니다. 짧게 만들어서 책상에도 놓고 수시로 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학십도의 '십도(十圖)'란 열 개의 그림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도(圖)'란 서양 말로 다이어그램(diagram)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복잡한 철학 원리를 시각적으로 정리한 구조도입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 중요한 것을 전달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린 적이 있습니다. 그냥 공부해라, 착하게 살아라 같은 말은 너무 공허하고, 그렇다고 긴 설명은 아이가 듣지 않습니다. 퇴계가 열 장의 그림을 선택한 이유가 거기 있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말로 다 전할 수 없으니 그림으로, 글로, 구조로 담으려 했던 것이겠지요.
성학십도는 다음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제1도 태극도: 우주의 근본 원리
- 제2도 서명도: 인간과 우주의 관계
- 제3도 소학도: 7세부터 15세까지 기본 교육
- 제4도 대학도: 자기완성과 통치의 원리
- 제5도 백록동규도: 주자의 학교 규칙
- 제6도 심통성정도: 마음의 구조
- 제7도 인설도: 인(仁)의 본질과 실천
- 제8도 심학도: 마음에 대한 경전의 가르침
- 제9도 경재잠도: 경(敬)의 수양법
- 제10도 숙흥야매잠도: 하루 일과의 마음가짐
정치의 근본은 통치자의 마음에서 나온다
퇴계가 성학십도에서 가장 강조한 핵심은 결국 하나입니다. 모든 정치는 통치자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열 개의 그림 가운데 세 장(제6도~제8도)을 마음을 설명하는 데 썼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퇴계는 제6도 심통성정도에서 마음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마음이 본성(性)과 감정(情)을 모두 포괄한다는 뜻으로, 쉽게 말해 우리 마음속에는 타고난 도덕성과 순간순간 일어나는 감정이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퇴계가 속한 성리학(性理學) 전통은 주자(朱子, 1130~1200)의 철학을 바탕으로 합니다. 여기서 성리학이란 사람의 본성(性)과 우주의 이치(理)를 탐구하는 학문을 말합니다. 주자는 북송 오자(周濂溪, 邵康節, 張橫渠, 程明道, 程伊川)의 학문을 계승하여 사서(논어, 맹자, 중용, 대학)를 집대성했고, 이것이 조선시대 내내 통치 이념의 근간이 되었습니다(출처: 한국국학진흥원).
저는 이 대목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아이에게 뭔가 가르치려고 할 때 저 자신은 어땠나 돌아봤기 때문입니다. 공부해라 말하면서 제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일찍 자라 하면서 제가 더 늦게 자고 있었습니다. 퇴계가 선조에게 먼저 마음을 닦으라고 했던 것처럼, 저도 아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제 마음부터 물어봐야 했던 것 같습니다.
퇴계는 상소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도는 형상이 없고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학문이 전승되지 않으면 가야 할 길이 밝혀지지 못하고, 길이 밝혀지지 못하면 좋은 정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뛰어난 기술자에게 잣대가 필요하듯 훌륭한 제왕에게는 성인의 학문이 잣대가 된다는 뜻입니다. 목적 없는 루틴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500년 전 루틴의 원형, 숙흥야매잠도
특히 성학십도의 마지막 장인 제10도 숙흥야매잠도를 읽으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의 마음가짐을 정리한 그 표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플래너나 습관 추적기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닭이 울기 전에 일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 종일 경(敬)을 유지하며, 밤에 잠들기 전 그날을 반성하라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경(敬)이란 마음을 한곳에 모으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집중력과 경건함을 동시에 담은 개념입니다.
저도 한동안 미라클 모닝을 시도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독서하고 운동하고 일기 쓰고. 유튜브에서 본 루틴을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3일은 했습니다. 4일째 알람을 끄고 다시 잤습니다. 숙흥야매잠도와 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퇴계가 말하는 아침 루틴은 외적 행동보다 내적 마음가짐이 먼저라는 겁니다. 일어나서 뭘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느냐.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뭘 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지, 왜 일어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3일을 넘기지 못한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습니다.
퇴계가 성학십도를 올리면서 담으려 했던 것도 결국 그것이었을 겁니다. 어린 왕에게 특정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의 이유, 즉 마음의 방향을 먼저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제9도 경재잠도에서 제시하는 '무시무처(無時無處)'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경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서 일관된 마음가짐을 유지하라는 의미입니다.
안타깝게도 선조는 퇴계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퇴계가 경고했던 것처럼 조선은 임진왜란이라는 재앙을 맞았습니다.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외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선은 옳은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선조가 피란길에 올라 경복궁이 불타는 것을 보면서 떠올렸을 이름이 퇴계였을지, 율곡이었을지. 그 아이러니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성학십도를 읽고 나서 저는 제 아이에게 처음으로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줬습니다. 학원 성적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기 위해서라고. 퇴계가 68세에 열 장의 그림으로 17세 소년에게 전하려 했던 것처럼, 저도 제 방식으로 전달해보려 했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이의 표정이 평소 공부해라 할 때와는 달랐습니다. 마음이 먼저라는 말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FlwUZbrxsI
https://www.youtube.com/watch?v=c4uLlTHyhx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