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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선생님이 지킨 한글 (현대 한글, 조선어학회, 말모이)

by qnwkdjaak 2026. 3. 7.

주시경 선생님이 지킨 한글 (현대 한글, 조선어학회, 말모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지 450년이 지난 1894년, 한 청년이 서당에서 한문 강독을 듣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왜 우리말로 설명할 때만 아이들이 눈을 반짝일까?" 그 청년이 바로 주시경입니다. 저는 이 기록들을 보면서 한글이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자음과 모음 체계, 띄어쓰기, 맞춤법의 뼈대가 모두 이분 손에서 나왔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알았습니다.

훈민정음을 현대 한글로 바꾼 사람, 주시경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나 13살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양반 자제들이 다니는 사립 서당에 중인 신분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담장 너머로 몰래 수업을 엿듣다가 진사 이회정의 눈에 띄어 특별히 입학을 허락받았습니다. 여기서 그는 한문 원문을 달달 외운 뒤에야 우리말로 풀이를 듣는 교육 방식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었습니다(출처: 한글학회).

배재학당에 입학한 뒤 주시경은 헐버트를 만나 서양 학문을 배우면서 동시에 스승에게 한글의 가치를 역으로 가르쳐주었습니다. 여기서 '형태음소적 표기'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쉽게 말해 발음나는 대로 쓰지 않고 단어의 원형을 살려 쓰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같습니다"를 "가슴니다"로 적지 않고 "같"이라는 어간을 유지하는 것이죠. 이 원칙이 바로 지금 우리가 쓰는 한글 맞춤법의 핵심입니다.

1896년 독립신문이 창간될 때 주시경은 국문 교정을 맡으면서 최초로 띄어쓰기를 시도했습니다. 제가 직접 옛 신문을 찾아봤는데, 띄어쓰기가 없으면 문장이 위로 붙을지 아래로 붙을지 헷갈려서 읽기가 정말 어렵더군요. 그는 또한 쉬운 단어를 골라 쓰는 일에 집착했습니다. "시골 할머니도 이 말을 알아들을까?"를 늘 고민하며 어려운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꿔 썼습니다.

주시경이 정립한 핵심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초성·중성·종성 대신 자음과 모음으로 분류
  • 이중자음(ㄲ, ㄸ 등)을 쌍기역, 쌍디귿 같은 쌍자음으로 통일
  • 아래아(ㆍ) 폐지 및 ㅡ, ㅓ로 환원

이런 체계가 없었다면 지금도 우리는 500년 전 고어를 쓰고 있었을 겁니다.

550명의 제자가 이어간 조선어학회

주시경은 1907년부터 1914년까지 전국을 돌며 국어 강습회를 열었습니다. 하루에 열 개가 넘는 학교를 돌아다녔고, 책을 보따리에 싸서 다녔기 때문에 별명이 '주보따리'였습니다. 앉은 자리가 식을 새 없이 뛰어다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강습회에서 배출된 제자가 무려 550명에 달했고,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최현배와 김두봉입니다(출처: 국립국어원).

1914년 7월 27일, 주시경은 급작스러운 복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겨우 39세였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과로로 쓰러질 때까지 보따리를 메고 전국을 누비던 그 뒷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어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1921년 창립되어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25회가 넘는 회의를 했고, 천도교 회당과 보성학교 등지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사진을 보면 수백 명이 빽빽하게 앉아 책상을 치며 논쟁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형태소'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는데, 형태소란 의미를 가진 가장 작은 언어 단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먹었다"는 "먹-", "-었-", "-다" 세 개의 형태소로 분석됩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졌습니다. 일제는 사전 편찬 작업을 독립운동으로 간주하고 회원 30여 명을 검거했습니다. 이윤재와 한징은 고문 끝에 옥사했고, 최현배와 이극로는 해방 직전에야 풀려났습니다. 이윤재는 고문으로 이빨 두 개가 빠지고 귀가 찢어졌으며, 영하 30도 감옥에서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절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정말 경이롭습니다.

말모이에서 큰사전까지

'말모이'는 우리말을 모은다는 뜻으로, 일제강점기에 편찬하려 했던 사전의 이름입니다. 주시경은 1910년 조선광문회에서 말모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사투리를 수집하기 위해 '한글'이라는 잡지에 광고를 실었고,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쓰는 말을 편지로 보내왔습니다. 당고추, 고추, 잠때, 주저리, 자고... 같은 단어 하나에도 지역마다 수십 가지 이름이 있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이 말모이 원고를 바탕으로 13년에 걸쳐 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1942년 일제가 이 원고를 압수했지만, 해방 후 경성역(서울역) 창고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1947년 '조선말 큰사전' 1권이 간행되었고, 1957년까지 총 6권이 완성되었습니다. 주시경이 사전 작업을 시작한 지 무려 4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제가 영화 '말모이'를 다시 보게 된 이유가 바로 이 기록들 때문입니다. 개봉 당시 평론가들이 혹독하게 비판해서 흥행이 저조했지만, 직접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이건 한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해방이 올지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인생을 통째로 바쳐 사전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독일 유학 중이던 이극로는 중국어 강좌, 일본어 강좌는 있는데 조선어 강좌가 없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했다고 합니다. 외국인들이 "사전도 없는데 무슨 문자냐"고 비웃었고, 이것이 사전 편찬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주시경은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자꾸 머릿속에 맴돕니다. 우리가 지금 한글로 욕을 섞어 쓰고, 줄이고, 외래어를 갖다 붙이는 동안, 이 말을 지키기 위해 손가락이 잘리고 이가 빠지도록 고문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름다운 한글로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 대신, 이 말의 무게에 걸맞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시경과 조선어학회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가 오늘 이 글을 한글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고도 경이롭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n3R9Op8t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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