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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영어교육 (육영공원, 원어민 수업, 일제 잔재)

by qnwkdjaak 2026. 3. 6.

조선시대 영어교육 (육영공원, 원어민 수업, 일제 잔재)

 

솔직히 처음 조선시대 영어교육 자료를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막연하게 '옛날엔 영어 같은 거 없었겠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140년 전 갓 쓰고 도포 입은 조상님들이 원어민에게 직접 배워 유창하게 대화했다는 기록을 보고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호기심에 '조선식 영어단어장'을 인터넷으로 찾아 실제로 공부해봤는데, 발음이 술술 나오고 R과 L 구분도 확실하게 되더라고요. 학원 원어민 선생님(영국인)한테 발음 좋다는 칭찬까지 받고 나니, 지금껏 배운 복잡한 발음기호는 대체 뭐였나 싶어 허탈했습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과 육영공원의 탄생

1882년 5월 22일, 강화도 제물포에서 조선과 미국이 최초로 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조선측 전권대신 신헌과 미국측 제독 슈펠트 사이에 청나라 관리 마건충이 통역으로 끼어들었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헌이 한국어로 말하면 마건충이 중국어로 받아 다시 영어로 전달하고, 슈펠트의 영어는 중국어를 거쳐 한국어로 전해지는 이중 통역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중 통역이란 두 나라가 직접 대화하지 못해 제3국 언어를 매개로 두 번 거쳐야 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조약 제12조에는 "5년 후 양국 관민이 각각 언어에 익숙하게 되었을 때 통상 조건을 다시 상의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언어 문제로 인한 외교적 손실을 절감한 고종은 1886년 육영공원(育英公院)이라는 최초의 국립 영어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육영공원은 단순한 어학원이 아니라 양반 관리와 명문가 자제들을 대상으로 근대 지식과 영어를 동시에 교육하는 엘리트 양성기관이었습니다. 미국 공사의 요청으로 파견된 교사 세 명(헐버트, 벙커, 길모어)은 모두 다트머스대학, 오벌린대학, 프린스턴대학 출신 원어민이었습니다.

수업은 처음부터 100% 영어로 진행되었습니다. 교과서도 모두 영어였고, 교사들은 지리·역사·과학 등 근대 과목을 영어로 가르쳤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기숙하며 하루 6시간씩 영어에 몰입했습니다. 이른바 영어 몰입교육(English Immersion)이 140년 전 조선에서 이미 실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어 몰입교육이란 모든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해 학습자가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하도록 하는 교육 방식입니다. 헐버트의 회고록에 따르면 "처음엔 통역이 필요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통역 없이도 수업이 가능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10개월 만에 3,000단어를 외운 학생도 있었고, 1901년 일본인 시노부 존페는 "조선 사람은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어학자"라고 기록했습니다.

육영공원 졸업생 중 한 명인 장봉환은 1893년 주미공사관으로 파견되었고, 그의 영어 실력은 영국인 세비지랜도어도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육영공원 교재였던 『The Citizen Reader』에는 장봉환이 연필로 한자 뜻을 적으며 공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고종은 학생들의 영어 시험을 직접 감독할 만큼 영어교육에 전폭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원어민 수업 한글 발음기호를 활용한 조선식 영어교재

조선시대 영어교재 『아학편』(1905년, 지석영·전영규 편찬)은 정말 놀라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원래 정약용이 쓴 한자 학습서를 개화기 학자 지석영이 한국어·중국어·일본어·영어를 동시에 표기하도록 개편한 4개 국어 통합 교재입니다. 여기서 4개 국어 통합 교재란 하나의 한자에 네 나라 언어의 발음과 뜻을 모두 표기해 동시에 학습할 수 있게 만든 책을 뜻합니다.

『아학편』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 발음을 한글로 표기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run'은 '런'이 아니라 '을런'으로, 'love'는 '러브'가 아니라 '을러브'로 적었습니다. R 발음 앞에 '을'을 붙여 혀를 굴리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L과 R의 구분도 명확했습니다. 'rice'는 '라이스', 'lice'는 '을라이스'로 표기해 두 소리를 확실히 구분했습니다. F 발음은 비읍 순경음 'ㅸ'(ㅂ+ㅎ)을 사용했고, V 발음은 'ㅹ'(ㅂ+순경음)를 써서 입술소리의 미세한 차이까지 표현했습니다(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저는 이 방식으로 단어를 외워봤는데, 정말 발음이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영어 시간에 배운 발음기호 [ə], [ɔ:] 같은 건 외우기도 힘들고 실제로 발음할 때도 헷갈렸는데, 한글 표기는 그냥 읽으면 되니까 훨씬 직관적이었습니다. 원어민 선생님도 제 발음이 좋다고 했으니, 이건 단순히 옛날 방식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과학적인 방식이었던 겁니다.

당시 조선의 영어교육은 회화 중심이었습니다. 원어민 교사가 직접 가르쳤고, 학생들은 듣고 따라 말하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문법을 먼저 배운 게 아니라 소리를 먼저 익혔습니다. 1920년 보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일본인 영어 교사의 발음이 엉망이라며 동맹휴학을 벌인 사건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이미 정확한 발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식 영어를 구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문법 중심 조선시대 영어교육의 시작

1910년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조선의 영어교육은 급격히 변질되었습니다. 일제는 영어 수업 시간을 대폭 축소하고, 교사 자격을 "일본어에 능통한 자"로 제한했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영어 교사가 일본인으로 채워졌고, 수업 방식도 회화 중심에서 문법·번역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훌륭한 영어 교사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대학 입시 통과를 위한 퍼즐과 트릭을 마스터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1928년 영어 교사로 근무했던 미국인 드레이크의 수필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칠판에 'world'를 쓰고 학생들에게 읽어보라고 하자 "와르도"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학생들의 발음이 너무 독특해서 드레이크는 알아듣지 못했고, 정확한 발음을 가르쳐주자 학생들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일본인 교사들의 잘못된 발음이 이미 학생들에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제는 왜 이렇게 영어교육을 망쳐놓았을까요. 식민지 국민에게 유창한 영어는 필요 없었습니다. 일본 본토 학생들도 문법·번역 중심으로 배웠으니, 조선 학생들에게 더 나은 방식을 적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1938년 이후에는 영어 과목 자체가 거의 폐지되다시피 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미국과 적대 관계가 되면서, 영어는 '적성국 언어'로 낙인찍혔습니다.

광복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일제 시대에 일본식 문법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교사가 되었고, 그들이 다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문법·번역 중심의 교육 방식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중고등학교 때 3인칭 단수 현재형, 분사구문, 가정법 과거완료 같은 걸 달달 외웠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입이 얼어붙었습니다. 제 경험상 문법을 아무리 많이 알아도 실제 대화에서는 1도 도움이 안 됩니다.

조선시대 영어교육이 지금보다 나았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원어민 교사, 회화 중심 수업, 한글을 활용한 발음 표기. 이 세 가지만 있으면 한국인은 영어를 충분히 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조선식 단어장으로 공부했을 때 정말 효과를 봤으니까요. 지금이라도 문법 위주 교육을 걷어내고 말하기 중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일제 잔재를 벗어나지 못한 채 80년을 허비한 건 일제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A1OXy6OU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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