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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간서치 (조선 독서광, 서얼 학자, 규장각 검서관)

by qnwkdjaak 2026. 3. 25.

이덕무 간서치

 

솔직히 저는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한 달에 두세 권씩 읽었지만, 작년에 읽은 책 제목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시대 이덕무라는 학자를 알게 됐는데, 이 사람은 '간서치(看書痴)'라는 별명을 가진 독서광이었습니다. 밥을 굶으면서도 책을 놓지 않았고, 평생 2만 권이 넘는 책을 읽고 수백 권을 직접 베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 속에서도 오직 독서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그의 이야기는,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저를 조용히 흔들어 놓았습니다.

서얼 출신 독서광, 간서치 이덕무의 삶

이덕무는 1741년 한성부 관인방 대사동(현재 인사동 일대)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전주 이씨로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의 후손이라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아버지가 서얼이었기 때문에 그 역시 평생 서얼 신분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서얼이란 양반 남성과 첩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조선시대 신분제에서 법적으로 과거 응시 자격이 제한되고 관직 진출이 극도로 어려웠습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쉽게 말해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태어날 때부터 천장이 정해져 있었던 겁니다.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고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독학으로 경서와 사서, 고금의 기문이서에 통달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간서치', 즉 책만 보는 바보라고 불렀는데, 이덕무는 이 별명을 오히려 즐겨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서재 이름을 '구서재(九書齋)'라고 지을 정도로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구서재란 독서(讀書), 간서(看書), 장서(藏書), 초서(抄書), 교서(校書), 평서(評書), 저서(著書), 차서(借書), 폭서(曝書) 등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일과 뜻을 의미합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저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제가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 피곤해서, 집중이 안 돼서였는데, 이덕무는 읽는 것 말고는 자신을 증명할 방법 자체가 없었습니다. 밥을 굶으면서도 가장 귀한 책 일곱 권을 팔아 떡을 사먹고 친구 유득공과 함께 술을 나눴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그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자 저항이었던 겁니다.

정조 시대 규장각 검서관, 서얼 학자의 기회

이덕무의 학문적 역량은 마침내 정조 대왕의 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정조는 즉위 초부터 노론 중심의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인재를 발탁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1779년 정조 3년 6월 1일, 정조는 규장각 외각 교서관에 '검서관(檢書官)'이라는 관직을 신설하고 이덕무를 첫 번째로 발탁했습니다. 검서관이란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에서 책을 정리하고 교정하며 편찬 사업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은 직책입니다. 이덕무는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와 함께 '규장각 사검서관'으로 불리며 정조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비록 9품이라는 낮은 직책이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규장각은 단순한 왕실 도서관이 아니라 정조의 개혁 정치를 뒷받침할 인재 양성 및 정책 연구 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기존 관료 체계에서 소외되었던 서얼 출신 학자들은 정조에게 충성심이 강하고 학문적 역량이 뛰어난 새로운 인재풀이었습니다. 정조는 이들을 등용함으로써 기존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고 자신의 개혁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우군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규장각 재직 중 이덕무는 『도서집성』, 『국조보감』, 『대전통편』, 『규장각지』, 『홍문관지』, 『규장전운』, 『무예도보통지』 등 수많은 서적의 정리, 교감, 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정조의 문화 진흥 및 개혁 사업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정조 앞에서 치러진 시문 경연인 '규장각 8경 시제'에서 장원을 차지하며 어난 문장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덕무는 규장각 검서관이라는 기회를 잡았지만, 그 기회가 주어지기까지 수십 년간 홀로 책을 읽으며 준비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겁니다. 저는 기회가 없다고 투덜거리면서 정작 기회가 왔을 때 보여줄 실력을 쌓는 데는 소홀했습니다. 이덕무의 삶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백과사전적 학자, 청장관전서와 사소절

이덕무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하면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는 역사, 지리, 곤충, 물고기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백과사전적 저술로 평가됩니다. 청장관전서란 이덕무의 모든 저술을 집대성한 전집으로, 그의 사후 아들 이광규에 의해 간행되었습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의 실증적 지향점을 잘 보여주는 자료로, 17세기 이수광의 『지봉유설』, 18세기 이익의 『성호사설』과 함께 조선 후기 백과전서적 학풍을 대표하는 중요한 저서로 자리합니다.

또한 1775년에 저술된 『사소절(士小節)』은 선비, 사대부, 부녀자 및 아동의 일상생활 예절과 수신에 대한 교훈을 당시 풍속에 맞게 예시를 들어 설명한 수양서입니다. 이덕무는 이 책을 통해 주자학의 관념적 유희를 배격하고 보다 현실적인 교육을 주장했습니다. 사소절에는 인도주의, 평등주의, 실질주의 사상이 담겨 있으며, 특히 개인차 존중, 중용 사상, 노동의 교육적 가치, 학문 방법에서의 과학적 검증 강조 등은 현대 교육에서도 중요시되는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덕무의 학문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백과전서적 접근: 경사와 문학, 경제, 제도, 풍속, 서화, 금석, 도서, 조수, 초목에 이르기까지 탐구하고 고증하지 않는 분야가 없었습니다.
  • 실증주의: 관념적 논의보다 구체적 사실 확인과 고증을 중시했습니다.
  • 진경주의: 중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조선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 독서 태도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핵심은 뭐지?'라는 질문만 던졌지, '이 내용이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될까?', '저자의 주장은 검증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덕무는 읽고, 베끼고, 정리하고, 고증하고, 저술하는 전 과정을 거치며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덕무의 학문은 그의 아들 이광규(검서관, 현감 역임)와 손자 이규경(19세기 백과전서적 학풍의 대표 인물)에게 이어지는 가학의 전통을 형성했습니다. 특히 손자 이규경의 저술 『오주연문장전산고』는 할아버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를 전범으로 삼아 편찬되었으며, 조선 후기 백과전서적 학풍의 계승과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이덕무의 학문이 단순히 한 시대의 지적 유산에 그치지 않고 가학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후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덕무는 1793년 음력 1월 25일 아침, 53세의 나이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조의 명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임명된 지 14년 만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술과 학문적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조선 후기 실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미래를 개척한 그의 모습은, 운명에 덤벼든 자세로 분투한 정신의 표본으로 평가됩니다.

저는 이덕무의 이야기를 통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단순히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다시 쓰는 전 과정이 독서의 일부였던 겁니다. 그 이후로 저는 자기 전 스마트폰 대신 책을 펼치는 작은 습관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10분도 버티기 힘들었지만, 억지로라도 한 페이지씩 읽다 보니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이 됐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덕무도 처음부터 규장각 검서관이었던 게 아니었으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xtLjj3tIRM
https://www.youtube.com/watch?v=Vg4w6jQagOY
https://www.youtube.com/watch?v=P9fjrqIh2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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