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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서얼 차별 (호부호형, 칠서지옥, 허통)

by qnwkdjaak 2026. 3. 27.

조선 서얼 차별 (호부호형, 칠서지옥, 허통)

 

아버지가 정승인데 아들은 과거시험조차 볼 수 없다면 어떨까요? 조선시대 서얼들은 바로 이 상황을 470년 동안 겪었습니다. 저는 중학생 때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솔직히 홍길동이 좀 유난 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얼 차별의 실제 역사를 파고들면서 그때 제가 얼마나 건성으로 읽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홍길동의 분노는 과장이 아니라 오히려 절제된 편이었습니다.

조선 서얼이란 무엇이며 왜 차별받았나

서얼(庶孽)은 서자와 얼자를 합친 말입니다. 서자는 양인 출신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이고, 얼자는 천인 출신 첩에게서 태어난 자식입니다. 여기서 양인이란 평민 이상의 신분을 가진 여성을 의미하며, 천인은 노비나 기생 같은 천한 신분의 여성을 가리킵니다. 같은 첩의 자식인데도 어머니의 출신에 따라 또 한 번 등급이 나뉘었습니다.

재산 상속부터 차이가 났습니다. 적자가 재산 7을 받으면 서자는 1을 받았고, 얼자는 10분의 1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아버지가 재산 10억을 남겼을 때 형은 7억을 받는데 저는 1억만 받는 겁니다. 같은 아버지 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자랐는데 어머니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일곱 배 차이가 났습니다.

진짜 문제는 과거 시험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출세하려면 과거를 봐야 했는데, 서얼은 문과 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생원시, 진사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아무리 글을 잘 써도 시험장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수능을 볼 수 없는 겁니다. 성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자격이 박탈된 거였습니다.

서얼 차별이 조선에서 유독 심했던 이유는 구조적 문제였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첩의 자식도 능력 있으면 관직에 나갈 수 있었는데 조선만 이렇게 막았습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은 과거 급제 말고 다른 출세 수단이 없었고, 상공업은 천시받았으며, 인구는 늘어나는데 관직 자리는 한정돼 있으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경쟁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서얼을 배제한 겁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서얼이라는 신분이 대를 이어 세습되었다는 점입니다. 서얼의 자식은 정실 부인에게서 태어나도 여전히 서얼이었습니다. 이를 서손(庶孫)이라 불렀는데 서얼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할아버지가 서얼이면 아버지도 서얼, 나도 서얼, 내 아들도 서얼이었습니다. 자자손손 끝이 없었습니다.

서얼 차별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과거 시험(문과, 생원시, 진사시) 응시 금지
  • 재산 상속에서 적자의 7분의 1 또는 10분의 1만 수령
  • 아버지를 아버지라,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음(호부호형 금지)
  • 청요직(이조, 병조, 사헌부 등) 진출 불가
  • 관직 승진 상한선 존재(최고 정3품 또는 정5품)

칠서지옥과 서얼 허통의 역사

1613년 광해군 5년, 문경 조령에서 은상인이 살해당하고 은자 수백량이 탈취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은 일곱 명이었는데, 모두 조선 최고 명문가의 서자들이었습니다. 박서의 아버지는 영의정 박순이었고, 서양갑의 아버지는 목사 서익, 심우영의 아버지는 감사 심전이었습니다. 하나같이 조선 최고위급 관료의 집안이었습니다.

이들은 1608년 선조가 죽기 직전에 서얼 허통을 요청하는 연명 상소를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서얼에게도 과거 응시와 관직 진출의 길을 열어 달라는 내용이었지만 조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합법적인 길이 막히자 이들은 여주와 춘천 일대 소양강변에 모여 살기 시작했고, 스스로를 강변칠우(江邊七友)라고 불렀습니다. 정자 이름은 무륜당(無倫堂)이었는데, "이 세상의 윤리가 우리를 버렸으니 우리도 윤리를 버리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여기서 칠서지옥(七庶之獄)이란 일곱 명의 서얼이 관련된 옥사라는 뜻입니다. 계축옥사라고도 불립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광해군을 둘러싸고 대북파와 소북파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는데, 대북파의 수장 이첨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결국 일곱 명의 서얼은 모두 처형당했고, 영창대군은 겨우 아홉 살의 나이에 강화도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상하게 화가 났습니다. 감동이 아니라 분노였습니다. 칠서지옥의 주범들은 처음부터 범죄자가 아니었습니다. 상소 올려도 무시당하고 합법적인 길이 막히니까 결국 다른 선택을 한 겁니다. 그 선택이 범죄였고 처형으로 끝났지만, 분노가 어디서 왔는지는 이해가 됐습니다.

서얼 허통 운동은 수백 년 동안 끈질기게 이어졌습니다. 허통(許通)이란 금고를 풀어 과거 응시를 허락한다는 뜻입니다.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마자 서얼 1,600여 명이 도성에 모여 상소를 올렸고, 1724년 영조 즉위 때는 무려 5,000명이 연명 상소를 올렸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진짜 변화가 시작된 건 영조 때였습니다. 영조 자신이 무수리 출신 어머니 숙빈 최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서얼의 아픔을 이해했습니다. 1772년 영조는 통청유음(通淸儒音)을 반포하여 서얼도 청요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고, 호부호형 금지도 공식적으로 풀었습니다. 태종 이후 350년 만이었습니다.

정조는 영조의 노력을 이어받아 1778년 정유절목을 공포했습니다. 서얼이 이조, 호조, 병조의 참상관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고, 외직에서는 부사, 목사까지 오를 수 있게 했습니다. 규장각의 검서관 제도를 두어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서이수 같은 서얼 출신 학자들을 대거 등용한 것도 이때입니다.

하지만 법이 바뀌어도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허통 이후 138년 동안 문과에 급제한 서얼은 겨우 42명에 불과했습니다. 1년에 한 명도 안 되는 숫자였습니다. 법은 열렸지만 시험관들이 서얼의 답안지를 볼 때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급제하더라도 관직 배정에서 차별이 계속되었습니다.

결정적인 변화는 1894년 갑오개혁 때 왔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서자 차별을 철폐하는 조치를 내렸고, 갑오개혁에서 이것이 법적으로 명문화되었습니다. 공사노비 제도가 혁파되고 서얼에 대한 관리 임용 차별이 법적으로 완전히 철폐되었습니다. 1415년 태종의 서얼금고법으로부터 정확히 479년 만이었습니다.

4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얼들은 싸웠습니다. 상소를 올리고 집단 시위를 하고 때로는 반란을 일으키고 때로는 학문으로 실력을 증명했습니다. 한 세대가 싸워서 안 되면 다음 세대가 이어받아 싸웠습니다. 제가 취업 준비할 때 스펙 쌓고 자소서 고치면서 출발선이 다른 구조에 허탈함을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절망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적어도 시험장 안에는 들어갈 수 있었는데, 서얼은 그 문 앞에서 아예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법이 철폐된 뒤에도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 인식, 가문 내의 차별은 법보다 훨씬 오래 갔습니다. 족보의 서얼 표시가 남아 있었고, 혼인과 사회생활에서의 차별은 한참 뒤까지 이어졌습니다. 법을 바꾸는 데 470년 걸렸는데 사람들의 머릿속을 바꾸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겁니다.

허준이 서자 출신이라 의과를 택했고 동의보감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 감동보다 분노가 먼저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의학에 뜻이 있어서 간 게 아니라 다른 길이 막혀서 택한 거였습니다. 이익이 열하일기를 쓰고, 어숙권이 고사촬요를 편찬하고, 한치윤이 해동역사를 지은 것도 모두 비슷한 맥락입니다. 관직도 못 하고 과거도 못 보고 사회적으로 인정도 못 받는 처지에서 이런 학문적 업적을 남긴 겁니다. 만약 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조선의 학문과 문화와 기술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찬란했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시대 서얼 차별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차별은 없다고 하지만, 태어난 환경이 기회를 결정하는 구조는 여전히 있습니다. 홍길동전을 그냥 시험 범위로 외웠던 중학생 때의 저처럼, 지금도 차별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서얼들이 470년 동안 싸워서 얻어낸 것은 단순히 시험을 볼 권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존중받을 권리였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그 권리였습니다. 그 당연한 것을 위해 470년을 싸워야 했다는 사실이 서얼의 비극이고 동시에 그들의 위대함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VF7ji8Ob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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